2017.11.2~3 부산여행 (1부: 초량상해거리)


11월 2일 3일 해서 1박 2일의 부산여행을 하러 부산으로 갔다. 코스는 부산역에서 출발해 초량상해거리, 40계단, 국제시장, 감천문화마을, 해운대 동백섬, 해운대 영화의 거리 순으로가는 것으로 짰다.

부산시티투어 노선. 나는 내 나름대로 코스를 짰기 때문에 패스.

부산시티투어 2층버스.

이 시티투어버스 역시 2층이다.

부산역 코앞에 위치한 초량상해거리로 갔다. 입구에는 한자로 상해문(上海門)이라고 적혀있다.

초량상해거리 위치.

상해문 코앞의 사거리에 가면 오른쪽의 수염이 긴 동상을 볼 수 있다.

응? 러시아도?? 

초량 근대역사 갤러리.


부산역과 부산항의 과거 사진.


초량상해거리에는 중국 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있다.


이 곳에 위치한 중국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삼국지 벽화를 보러 갔다.

2017/12/04 - [미각여행/味] - 부산 동구(부산역, 초량상해거리) 원향재


초량상해거리에는 인천 차이나타운처럼 삼국지 벽화가 있다. 

삼국지의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있다. 왼쪽부터 여포(呂布), 조운(趙云)(조자룡), 제갈량(諸葛亮)(제갈공명), 동탁(董卓), 손권(孫權), 조조(曹操).

손권, 조조, 장비(張飛), 관우(關羽), 유비(劉備).

초량상해거리에는 화교들을 위한 학교가 있다. 삼국지벽화는 화교소학교 벽에 그려져있다.

삼국지의 첫 시작인 도원결의(桃園結義). 유비, 관우, 장비는 복숭아 밭에서 의형제를 맺었다.

후한 말기는 장각(張角)의 황건적으로 혼란스러울 때였다. 유비, 관우, 장비는 의형제를 맺고 의병을 일으켜 황건적과 싸웠다.

호로관 전투. 황건적의 괴수 장각이 죽고 그 잔당들이 토벌되었으나 10명의 환관인 십상시(十常侍)에 의해 조정이 혼란스러웠다.

대장군 하진이 십상시를 제거하려 했으나 오히려 하진이 살해되었고 그 밑에 있었던 원소, 조조는 십상시와 그 가족들을 몰살했고 이 과정에서 동탁이 권력을 잡고 황제를 폐위하고 새로 황제를 옹립했다. 이에 원소, 조조는 '반동탁연합군'을 조직해서 낙양에서 동탁과 전투를 벌였다.

동탁은 먼저 화웅(華雄)을 보냈으나 전사하자 맹장 여포를 보내 반동탁연합군과 싸우게 한다. 이때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여포와 싸웠고 여포는 불리하자 호뢰관으로 도망쳤다.  

여포가 패배하자 동탁은 낙양성에 불을 지르고 장안성으로 도주했다. 불탄 낙양성에서 옥새가 발견되었고 이 옥새 때문에 반동탁연합군에 분열이 일어났다. 동탁은 왕윤의 미인계로 인해 여포에게 살해되었고 여포는 동탁의 잔당에게 패해서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 동탁의 잔당은 조조에 의해 제거되었고 조조는 황제를 거느리고 세력이 커졌다. 그러나 황제는 조조를 제거하라는 밀서를 유비에게 보냈으나 발각되었고 유비의 군대는 조조군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뿔뿔이 흩어졌고 유비는 원소에게, 관우는 유비의 가족과 함께 조조에게, 장비는 빈 성으로 갔다.

관우가 조조에게 있을 때 조조는 관우를 우대했고 원소와 전투가 벌어졌을 때 원소의 맹장인 안량, 문추를 쓰러트렸고 이 과정에서 유비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이에 관우는 조조의 곁을 떠나 유비에게 갔고 이 과정에서 '단기천리(單騎千里)'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관우는 유비를 찾아가던 중 장비와 만나게 되었으나 장비의 오해로 인해 서로 싸웠다. 유비의 부인이 장비를 말렸고 유비와 만나게 되었다. 또한 유비가 원소에게서 떠나던 중 명장인 조운과 만나게 되었고 조운은 유비의 장수가 된다. 유비가 원소에게서 떠난 후 원소는 조조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원소는 75만의 대군을 가졌고 조조는 10만 군대 뿐이었으나 원소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조조는 10만 군대로 원소의 75만 대군을 격파하게 된다. 

유비는 조조가 원소와의 전쟁에 빠진 틈을 타 조조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형(兄) 뻘이 되는 형주자사 유표에게 의탁하게 된다. 유표에게 의탁하던 중 제갈량을 삼고초려의 예로 자신의 밑에 거느리게 되었다. 

유표가 죽자 유표의 차남인 유종이 형주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종은 조조에게 항복했고 유비는 피난을 가게 된다. 이 때 많은 백성들이 유비를 따르게 되었고 이로 인해 피난속도가 느려졌다. 결국 조조의 습격을 받게 되었고 유비는 아들인 유선(아두)과 흩어지게 되었다. 조운은 아두를 구하기 위해 조조군 진영을 휩쓸고 다녔고 이때 조조는 조운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생포하라는 지시를 내려서 무사히 아두를 구할 수 있었다.

유비는 장판교 건너에서 주둔하고 있었고 장판교 위에 장비가 버티고 있었다. 장비가 장판교에서 버티는 동안 조조군은 공격을 하지 못했으나 장비가 장판교를 끊는 바람에 조조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제갈량의 계략으로 관우가 나타나 조조군은 후퇴했다. 유비는 유표의 장남 유기와 함께 강릉으로 갔고 제갈량은 손권과 동맹을 맺기 위해 동오(東吳)로 간다. 손권 진영에서 문신(文臣)들은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하고 무신(武臣)들은 싸우자고 한다. 제갈량은 손권을 조조와 싸우게 설득했고 손권은 조조와 싸우기로 한다.  

손권진영에 주유라는 책략가가 있었는데 제갈량과 함께 계략을 짜서 조조의 대군을 적벽에서 몰살했다. 이때 관우가 조조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조조가 자신을 받아준 것을 생각해서 조조를 살려보낸다.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제갈량의 계략으로 형주를 차지하게 되었고 촉(蜀) 땅의 유장을 복속시켜 촉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조는 촉의 위쪽에 위치한 한중을 차지하고 위(魏)왕이 되었다. 조조가 위왕이 되고나서 촉의 유비를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도리어 한중을 빼앗기게 된다. 한중을 차지한 유비는 촉(蜀)왕이 되었고 손권은 오(吳)왕이 되었다.

조조가 위왕, 유비가 촉왕, 손권이 오왕이 되고나서 손권은 조조와 손잡고 유비를 공격해 형주를 차지하고 이 과정에서 관우가 전사하게 된다. 관우가 전사한 후 조조는 병으로 죽었고 조조의 아들 조비가 위왕이 되었으나 조비는 한(漢) 황제를 폐위해 황제로 즉위한다. 유비는 조비가 황제로 즉위한 후, 황제로 즉위했고 손권에게 복수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나 이 과정에서 장비가 암살당했고 복수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유비는 병을 얻어 죽었고 유선(아두)이 황제로 즉위한다. 제갈량은 유선을 보필하면서 남만정벌을 했고 칠종칠금(七縱七擒) 끝에 남만왕 맹획의 항복을 받아낸다. 그 후, 제갈량은 촉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出師表)를 올려 북벌을 감행한다. 그러나 전부 실패로 끝났고 제갈량은 오장원(五丈原)에서 눈을 감는다.

 

제갈량 사후 위나라 장수였다가 촉한에 항복한 강유가 북벌을 했으나 그 역시 실패로 끝났고 이로 인해 촉나라의 국력은 약해졌다. 위나라의 진왕(晉王) 사마소는 촉나라를 멸망시켰으나 병으로 죽었고 그 아들 사마염이 위 황제를 폐위하고 진 황제로 즉위한 후 오나라를 멸망시켜 삼국을 통일했다.


삼국지 벽화내용을 설명하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초량상해거리를 다 둘러보고 40계단으로 갔다.


+ Recent posts